2023. 7. 21. 16:45ㆍ전기자동차
요약: 미래 모빌리티 시장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촉발된 모바일 혁명과 유사한 형태로 진행될 것입니다. 애플이 기존의 강자들을 제치고 모바일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소프트웨어인 IOS가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모빌리티 산업은 1단계인 “전동화”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성공을 하고 있는데 다음 단계인 SDV개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심 기술인 OS의 성공적인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OS를 어떻게 개발하는가에 따라 모바일 시장에서 벌어졌던 흥망성쇠가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재현될 것입니다.
자동차 업계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미래 모빌리티의 4가지 요소인 케이스(CASE), 즉 “연결성”(Connectivity), “자동화”(Automation), “공유”(Sharing), “전동화”(Electrification)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 4개의 요소들을 망라해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게 있다면 ‘자동차 OS(Operating System·운영체제) 혁명’입니다.
OS 혁명은 전기차·자율주행 혁명보다 더 시급할지 모릅니다. 더 제대로 된 전기차, 자율주행차를 만들려면, OS라는 ‘토대’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OS가 각 자동차 회사 제품 경쟁력의 차이를 가르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OS 혁명에서 뒤처지는 회사는 곧 쪼그라들거나 망하거나 다른 회사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아이폰을 통해 휴대전화의 OS가 근본적으로 바뀔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했습니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라, 전화 기능도 되는 손 안의 컴퓨터입니다. 미래 모빌리티에서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타고 다닐 수도 있는 컴퓨터·스마트폰이 될 겁니다. 따라서 모바일 혁명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일어난 일들, 즉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관련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향후 4~5년간 자동차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애플과 테슬라가 성공한 것은 전화와 자동차가 아니라, 컴퓨터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2007년 말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기존 피처폰 업계는 아이폰을 무시했습니다. 본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기술을 축적해 왔는데, 피처폰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애플이 무슨 기술이 있겠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입니다. 이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50%를 자랑했던 피처폰 거인 노키아가 망하기까지 딱 5년 걸렸습니다.
여기에서 얻을 시사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피처폰으로 이미 호황을 누리고 있던 기존 업체들이 장차 다가올 모바일 혁명이 가져올 세상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아이폰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습니다. 1992년 IBM은 사이먼 퍼스널 커뮤니케이터(IBM Simon Personal Communicator)라는 휴대전화를 발표했습니다. 사이먼은 발신/수신기능만 있는 당시 휴대전화들과 달리 주소록, 세계시간, 계산기, 메모장, 이메일, 팩스, 오락 기능이 포함되었고 최초로 터치스크린까지 탑재했었습니다.
이후 노키아에서도 1996년 노키아 최초의 스마트폰인 노키아 9000을 출시했고 소니에릭슨에서도 2000년 R380을 출시했지만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일부 소비자만 사용하는 틈새제품이라고 생각해 제품 개발에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애플은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기존 스마트폰과 완전히 다른 제품인 아이폰을 내놓았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이 기존 제품과 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애플이 스마트폰을 전화기가 아닌 컴퓨터라고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스마트폰은 기존 휴대폰에 일정관리와 메일 보내는 기능등이 추가된 전화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의 틀 안에서 스마트폰을 정의하다 보니 기존 휴대폰 업체들의 스마트폰은 발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애플이 휴대폰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며 무시했지만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를 가장 잘 만들어 오던 회사였기에 소형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어느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동차 업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CASE의 핵심은 자동차가 컴퓨터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라 컴퓨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업계가 쌓아 놓은 경쟁력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회사가 앞으로 자동차 세상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는 휴대전화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폰으로 촉발된 모바일 혁명 같은 일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일부 맞는 말이긴 합니다. 자동차는 스마트폰 업계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산업입니다. 스마트폰은 회사마다 자사 신모델을 매년 새로 내지만, 자동차는 모델 교체주기가 4~8년 정도입니다. 또 자동차의 평균 보유 연한은 13년 정도이며 전 세계엔 10억대 이상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기존 차량이 빨리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처럼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자동차 버전의 아이폰 혁명”은 필연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바로 OS가 있습니다.
다시 아이폰 쇼크 이후 피처폰 업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려 보겠습니다. 네, 바로 OS를 새로 개발해 대응하려 했습니다. 노키아는 기존에 사용하던 심비안 (Symbian)이라는 OS가 경쟁력이 없는 것이 밝혀지자 미고(MeeGO)라는 OS를 자체 개발하려다 실패했습니다. 삼성은 아이폰을 뜯어본 뒤 아이폰의 본질이 컴퓨터임을 깨닫고 사내 컴퓨터 관련 최우수 인재들을 모두 끌어 모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모바일 OS를 활용해 삼성 최초의 옴니아 (Omnia)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컴퓨터를 생산하던 삼성답게 옴니아의 하드웨어는 아이폰을 앞선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문제는 OS였습니다. 옴니아에 채용된 윈도우 모바일은 스마트폰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닌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용이어서 일부 앱들을 사용할 수 없었고 최적화도 되지 않아 너무 느렸습니다. 결국 바다 (Bada)라는 자체 OS를 개발했지만 결국 이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구글 안드로이드로 빨리 갈아타 이후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과 양분하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동차회사들이 테슬라 차량 뜯어보고 놀란 것은 전기차 성능이 아니라 전자제어장치와 운영체제 성능
아시다시피 기존 자동차 업계가 충격에 빠진 것은 테슬라 때문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의 주력 자동차인 ‘모델3’를 구입해 샅샅이 뜯어보고 충격받은 것은 전기차 성능 때문이 아닙니다. 테슬라의 OS, 그리고 그 OS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컴퓨터 성능 때문이었습니다.
모델3를 뜯어보니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제어하는 강력한 컴퓨터가 들어있었습니다. 이 컴퓨터를 일반적으로 ECU(Electronic Control Unit·전자제어유닛)라고 하는데요. 기존 자동차에는 이런 ECU가 100여 개나 들어갑니다. 테슬라처럼 중앙에 아주 강력한 컴퓨터 하나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각 기능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100여 개의 미니 컴퓨터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엔진 제어 따로, 에어백 제어 따로, 내비게이션·오디오 제어 따로, 공조장치 따로, 구동 부문의 각 요소마다 모두 따로따로 인 것이죠. 하다 못해 차량 유리창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손이 닿으면 멈춘다든지 하는 것을 제어하는 ECU조차 독자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럼 이 100여 개의 ECU를 구동하는 OS는 어떨까요? 네, 대부분 따로입니다. 그리고 그 OS는 자동차 회사가 원천기술을 갖고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ECU·OS도 함께 납품하는 게 보통입니다. 따라서 OS는 해당 부품회사가 가진 블랙박스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테슬라 모델 3를 뜯어보니 이런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해 컨트롤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다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이폰은 기기 안에 AP(Application Processor)라는 통합제어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모든 기능은 하나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iOS)로 구현됩니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앱 서비스로 돈을 버는 생태계는 아예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빌리티 서비스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돈을 벌려면, 일단 자동차가 그것을 받쳐줘야 합니다. 테슬라 차량을 뜯어본 자동차 업계는 그제야 전기차·자율주행차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OS를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게 됐습니다. 차량 기능제어의 통합이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은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이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테슬라 차량에서 그 미래가 너무도 빨리 왔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020년 2월 차량을 분해 분석하는 일본 니케이 BP 프로젝트 팀에서 테슬라 모델 3를 분석하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차량의 두뇌에 해당하는 제어기 기술에서 테슬라가 도요타나 폭스바겐에 비해 6년가량 앞선다" 또 한 일본의 자동차 엔지니어는 "테슬라의 제어기 플랫폼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테슬라 모델 3의 경우 HW3.0과 바디컨트롤러 3개로 차량을 제어하는 반면, 폭스바겐의 내연기관 차량은 70개로 제어한다. 테슬라의 경우 적은 제어기 개수로 중앙 집중형으로 효율과 성능 면에서 훨씬 앞서 나간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테슬라의 차량들은 OTA 즉 무선으로 운영체제가 업데이트됩니다. 스마트폰처럼 말입니다. 기존 자동차는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나 하려고 해도,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야 하합니다. 하지만 테슬라 차량은 집에서 무선 업데이트만으로도 차량 기능이 개선됩니다. 도로에서 다른 차를 피해 목적지까지 가게 해주는 주행보조장치 기능과 주행성능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정 가능합니다.
테슬라 모델 3의 대시보드를 보면, 중간에 큰 아이패드 모양의 패널이 하나 붙어있을 뿐 물리적으로 누르는 버튼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전기차 회사들이 테슬라의 대시보드처럼 대형 터치패널에 거의 모든 기능을 집어넣어 버튼을 최소화한 디자인을 따라가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모양은 따라 할 수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중앙에서 통합 제어하는 ECU·OS가 기반이 되어야 만 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자동차회사들, ECU·OS 한계 때문에 난항
기존 자동차 회사들도 테슬라 모델 3 같은 디자인의 차를 개발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존에 각각의 수많은 ECU와 OS가 존재하다 보니, 이것을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불가능합니다. 또 각각의 부품업체들이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보니, 이런 관계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른 자동차의 장점이 있으면, 그것을 빨리 참고해 자사 차량에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겉모양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모방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을 따라 해야 하는데, 이 눈에 안 보이는 부분, 즉 ECU·OS를 제대로 따라 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자금·시간·인력, 그리고 명확한 방향을 가진 기술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것은 대시보드 형상을 따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테슬라의 경쟁력은 탁월한 차량 성능도 있지만 이 부분은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그것을 따라가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테슬라의 진짜 경쟁력은, OS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OS 혁명과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벤츠, 자체 개발 포기하고 엔비디아와 협력해 테슬라 OS 추격
우선 독일 벤츠와 미국 엔비디아의 OS·ECU 공동개발을 주목해야 합니다. 벤츠는 단순히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독일 고급차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적 깊이나 이해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 회사로 벤츠를 꼽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CASE라는 용어도 2016년 당시 디터 제체(Dieter Zetsche) 벤츠 CEO가 처음 공개적으로 사용한 뒤, 일반화됐습니다. 그만큼 벤츠는 미래 기술에도 민감한 회사입니다.
벤츠는 테슬라 모델3를 뜯어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벤츠의 프리미엄 지위가 위험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는 테슬라 차량을 소비자들은 다른 고급차보다 프리미엄이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확산되면 벤츠가 쌓아 올린 프리미엄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벤츠는 고민합니다. 테슬라처럼 OS도 ECU도 모두 자체 개발을 할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자사 엔지니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테슬라와 같은 통합형 ECU에 들어갈 반도체는 엔비디아와 제휴해 엔비디아 제품을 쓰기로 했습니다. OS는 벤츠 독자시스템인 MB-OS(MercedesBenz-Operating System)를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벤츠의 독자 OS 개발에도 엔비디아가 상당 부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벤츠는 2024년부터 새로운 OS를 탑재한 차, 즉 테슬라처럼 거의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제어할 수 있고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차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물론 벤츠가 엔비디아에 기술을 의존하면, 반도체 회사 쪽에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을 좋아하는 자동차 회사로서는 어려운 결단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벤츠 같은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조차도, 망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아이폰 쇼크에 빠진 삼성이 자체 개발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안드로이드에 올라탔던 것과 비슷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공동개발의 첫 작품이 2024년이 돼야 나온다는 겁니다. 또 일부 차량에만 옵션으로 탑재되는 게 아니라, 해당 차량 전체에 기본 탑재될 것이라는 겁니다. 즉 벤츠·엔비디아의 OS·ECU는 기존 차량을 차츰 개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뜯어고치는 전면개혁 방식이라는 겁니다. 벤츠는 왜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했을까요? 아마도 이것이 늦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테슬라의 방식과 똑같습니다. 테슬라에는 대당 원가만 250만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ECU가 장착돼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냥 전기차이지만, 그 안에는 값비싼 고성능 컴퓨터가 포함된 셈입니다. 옵션이 아니고 모든 차에 기본 탑재돼 있습니다. 테슬라 고객은 FSD(Full Self Driving)라는 주행보조(향후 자율주행 기능으로 무료 업그레이드 예정) 소프트웨어를 별도 구매할 수 있는데요. 모델 3에서 이 기능을 쓰려면 1만 5천 달러를 더 줘야 합니다. 기본적인 주행보조 기능은 FSD를 구입하지 않아도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FSD가 필요 없는 소비자는 FSD를 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델 3 구매자가 FSD 소프트웨어를 별도 구매하지 않더라도, FSD를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ECU)는 모든 차량에 기본 탑재된다는 겁니다. 즉 소프트웨어를 안 사도 그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성능의 컴퓨터는 그냥 넣어준다는 얘기죠. 그래서 고객이 차를 타다가 중간에 마음이 변해 FSD를 구매한다면, 그 차량에 이미 장착돼 있는 컴퓨터의 봉인만 풀면 됩니다. 스마트폰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처음 살 때의 스마트폰 성능은 사실 오버 스펙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업데이트가 될 것을 상정해 그 업데이트나 다양한 추가 소프트웨어를 즐기기에 충분한 고사양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나중에 비싼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쓰려고 할 때, 스마트폰 기기의 성능이 모자라 구입을 못하면 안 되니까요.
벤츠가 2024년에 내놓는 차도 똑같은 방식이 될 겁니다. 벤츠는 그럴 수 있습니다. 원래 비싼 차니까요. 테슬라처럼 원가 250만 원의 컴퓨터를 모든 차에 넣어줘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가면 고급차의 정의가, 단순히 외관과 주행성능만 좋은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는 고급차로 바뀔 테니까요. 테슬라 같은 기능을 가진 벤츠라면, 내 외장만 번지르르한 다른 고급차들과 다시 큰 격차를 벌리고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벤츠가 엔비디아(그리고 엔비디아가 인수한 ARM)와 협력한다면, BMW는 모빌아이·인텔 연합과 공동개발하고 있습니다. 모빌아이·인텔의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산업용 반도체의 강자인 독일 인피니온 제품을 조합한다고 합니다. 다만 벤츠와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벤츠가 엔비디아와 함께 OS·ECU를 아예 새로 개발하는데 비해, BMW는 자사가 보유한 소프트웨어 자산을 활용하며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을 택한다고 합니다. 또 벤츠가 전차종에 일괄 탑재하는 것에 비해, BMW는 일부 특별한 차종에 우선 탑재하는 방식입니다.
폭스바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투입해 CARIAD 설립하여 OS 개발 중
폭스바겐도 OS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그룹 내 소프트웨어 개발 인원 5천 명을 한데 모아 카리아드 (Cariad)라는 소프트웨어 자회사를 설립하여 통합형 OS ‘VW.OS’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까지 직원을 1만 명까지 늘리고, 300억 유로(약 40조 30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통합 ECU의 반도체로는 일본 르네사스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폭스바겐 역시 벤츠와 생각이 좀 다른데요. 테슬라처럼 한 번에 바꾸는 벤츠와 달리, 폭스바겐도 단계적으로 ECU 기능을 통합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이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폭스바겐은 대중차이기 때문에, 테슬라나 벤츠처럼 대당 원가 250만 원 이상의 고성능 컴퓨터를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안 그래도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원가가 비싼데, 고성능 컴퓨터까지 넣어버리면 찻값이 너무 올라버리게 됩니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ID.3’에 ‘ICAS1(In-Car Application Server 1)’이라는 통합 ECU를 처음 탑재했습니다. 르네사스 반도체를 사용해 독일 메가서플라이어인 콘티넨털이 만들어 납품합니다.
그러나 VW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포르셰 마칸 EV에 적용하기로 한 OS E3 1.2 버전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마칸의 출시가 2024년으로 1년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는 CARIAD는 예산을 초과하면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원진이 전원 해고되었고 VW CEO였던 허버트 디스(Herbert Diess) 역시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세대인 E3 2.0보다 당장 급한 E3 1.2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면서 2025년에 개발을 완료하려고 했던 E3 2.0의 적용시점이 애초 목표보다 3년 뒤인 2028년 완성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SSP플랫폼 역시 2029년이나 2030년 정도에나 가능하다고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요타 자회사 우븐 바이 도요타 통해 OS 아린(Arene) 개발 중
도요타는 2018년 소프트웨어 부문 자회사인 우븐플래닛홀딩스 (2023년 4월 1일 부로 우븐 바이 도요타로 이름을 바꿈)를 설립하여 차량용 소프트웨어 “아린” (Arene)을 개발 중이다. 2025년 개발을 완료하고 2026년부터 전기차에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도요타도 폭스바겐처럼 르네사스의 반도체를 탑재한 ECU 기반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OS혁명에 뒤쳐지는 회사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도태될 것
아이폰 쇼크에 맞섰던 피처폰 업계가 완전히 새로운 OS를 개발해 대응하려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이든 모빌리티서비스든, 자동차가 그 기능을 구현할 능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려면 피처폰 수준의 기존 자동차의 OS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그것이 가능한 OS를 시판 차량에 적용한 회사는 오직 테슬라뿐입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를 잡기 위해 테슬라와 같은 통합형 OS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폭스바겐이나 도요타는 각각 소프트웨어 개발인력만 1만 명 이상을 확보하고,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한편 테슬라는 OS부터 ECU, 핵심 반도체까지 계속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그 성능을 계속 높여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려 할 것입니다. 기존 업계에선 이미 벤츠·엔비디아·ARM, BMW·모빌아이·인텔처럼 자동차회사와 반도체회사의 연합, 그리고 폭스바겐·콘티넨털·르네사스처럼 자동차회사와 부품업체 연합이 결성돼 격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중에 누가 주도권을 잡을지, 그래서 스마트폰 업계의 안드로이드 진영처럼, (자동차 업계의 애플인) 테슬라의 반대 진영이 대통합을 이룰지, 혹은 몇 개 연합으로 나뉠지도 주목됩니다.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기 이전에, 자동차가 먼저 스마트폰처럼 바뀌게 될 거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스마트폰처럼 무선으로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각종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바퀴 달린 컴퓨터’가 될 것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내·외장 디자인만 강조하고 개별 편의장비만 늘려 소비자를 유혹하던 자동차 회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OS 혁명에서 뒤처지는 회사는 아이폰·안드로이드폰 시대의 피처폰처럼 매력을 잃고 도태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출처: [최원석의 디코드] 현대차에 진짜 중요한건 'OS 혁명'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0/11/12/QWCJBCINUJFMBIWGU5PQ4Q4OO4/
'전기자동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IAA 2023: 테슬라, BMW, 벤츠의 기술 비교 (0) | 2023.09.20 |
---|---|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앞서가는 중국 (0) | 2023.08.31 |
테슬라에 맞서는 벤츠의 전략 (0) | 2023.06.02 |
포드 전기차 전략의 시사점 (0) | 2023.06.01 |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자동차의 미래: 애플의 위협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