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가져올 미래의 변화-전기 자동차의 역사

2022. 10. 4. 19:42전기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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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자동차의 역사

Robert Anderson
Robert Anderson

전기차의 등장은 1834년 스코틀랜드 사업가 로버트 앤더스경이 말없는 마차로 불리던 최초의 전기자동차를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전에도 헝가리의 수도승이었던 Jedlik Ányos (1800 ~1895)가 전기모터를 발명하고 1828년에 실험용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람이 탈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로버트 앤더슨이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최초의 내연기관 (1864년)

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가 최초의 내연기관을 발명한것이 1864년이니 그보다 무려 30년이나 앞서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2명을 태우고 거친 길을 달렸다고 하는데. 당시 배터리 기술은 충전이 불가능한 1차 전지였기때문에 매번 전지를 교체해야했으므로 이 기술은 실생활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운 발명이었다

최초의 축전지 (1865년)

이후 1865년 프랑스의 가스통 플란테(Gaston Plante)와 카밀 포레가 에너지를 저장할수 있는 축전지를 개발하면서 전기자동차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구스타프 트루베의 삼륜 전기차 (1881년)

전기차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1881,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전기박람회에서 구스타프 트루베(Gustave Trouvé: 1839~1902)가 삼륜전기자동차를 운행하면서부터라고 할수 있다. 트루베가 운전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전기차를 사기 시작했다. 이는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알려진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 (Patent Motorwagen: 1885)보다 앞선것이다.

벤츠의 모터바겐 (1885년)

전기차 전성시대

특히 전기차는 기어를 바꿔줄 필요가 없어 운전이 쉽고, 진동과 소음이 적어 상류층 여성 운전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전기차의 가격은 1,000달러 정도였지만, 여성 고객들은 비싼 실크나 털 등을 장식해 3,000달러 이상의 돈을 들여 타고 다녔다. 이렇게 프랑스나 영국에서 마담(madame)”차로 인기를 끌면서 전기차는 1900년대 초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최초의 양산 전기차 (1894년)

이어 영국에서는 1894년에 Thomas Parker (1843~1915)가 세계최초 양산형 4륜전기차를 개발하면서 양산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00년 전기자동차를 파리시의 소방차로 썼으며 뉴욕에선 전기차 충전소가 여러 곳 들어서면서 1897년부터 전기 택시 공급이 시작됐다. 1900년 당시 뉴욕에만 2000여 대의 전기차가 운행됐고, 이후 미국 전역에서 한때 3만여 대 이상의 전기차가 달렸다. “발명의 아버지로 알려진 토머스 에디슨도 전기차 개발자로 나섰다.

a.뉴욕시의 전기 택시                               b. 에디슨이 개발한 전기 자동차                                c. 전기차를 충전하는 모습

1903년 출시된 콜롬비아 런어바웃은 파격적인 가격(750달러)을 앞세워 1910년 단종될 때까지 1000대 이상 팔렸다. 콜롬비아의 다른 모델은 물론, 대부분의 자동차 가격이 3000달러를 넘었던 때, 단일 모델로 1000대가 팔린 세계 최초의 모델이다.

콜롬비아 런어바웃 (1903년)

콜롬비아 런어바웃은 시속 24km의 속력을 냈고 한 번 충전하면 40마일(65km)을 달릴 수 있었다. 당시 도로 곳곳에 설치된 충전소를 이용하면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약 400km를 어렵지 않게 달렸다.
당시 미국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는 4200여 대에 불과했다. 미국 전역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4대 중 1대가 콜롬비아 런어바웃이었던 셈이다. 단일 모델로는 지금도,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시장 점유율이다.

 

포드 모델T (1908년)

콜롬비아 런어바웃이 판매되던 동시대 휘발유차량인 포드 모델 T가 출시되었다. 포드 모델T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방식을 이용해 당시 고가이던 휘발유 차량의 가격을 850달러로 낮추었지만. 콜롬비아 런어바웃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는 전기차대비 휘발유차의 단점이 컸기때문이다.

포드 모델T의 시동을 거는 모습

일단 휘발유차는 매캐한 냄새와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결정적으로 웬만한 남자도 시동 걸기가 쉽지 않았다. 시동을 걸기위해 적지 않은 힘과 요령으로 크랭크 핸들을 여러차례 강하게 돌려야 시동이 걸린다.
운전석 옆자리를 조수석으로 부르는 것도 유럽과 미국의 고상한 귀족과 상류층, 여성 운전자가 크랭크 핸들을 돌려 시동을 거는 전문가를 이곳에 태우면서 시작됐다. 그만큼 크랭크 핸들을 돌리려면 많은 힘이 필요했고 간혹 역화 현상으로 팔이 부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1908년 생산된 포드 모델T역시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거는 방식이었다. 
반면 전기차는 스위치 하나로 간단하게 시동이 걸렸다. 당연하게 여성 고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덕분에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급속하게 확장됐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운행된 전기차의 숫자는 유럽 전역보다 많은 2000여 대에 달했다.
3000달러 이상,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자동차의 가격을 1000달러 미만으로 낮춘 콜롬비아 런어바웃의 인기는 당연히 치솟았다. 자연스럽게 여러 업체가 우후죽순 등장해 경쟁이 벌어졌고 미국 전역에서 한때 3만여 대 이상의 전기차가 운행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미국 전역을 합쳐 연간 수 십대에 불과했던 가솔린 자동차와 달리 콜롬비아의 전기차만 연간 수백여 대가 생산됐을 정도였다.

 

전기차의 퇴장

그러나 1913년 포드가 배터리와 스타트 모터로 시동을 거는 첨단 사양의 모델 T를 내놓았고 컨베이어 벨트 대량 생산 체제가 더 고도화되면서 1908 $ 850 (당시 평균 임금의 18 개월 치)에서 1925 $ 300 미만 (당시 평균 임금의 4 개월 치)로 가격이 더 낮아졌다. 반면에 전기자동차의 가격은 점점 상승해 평균 1750달러정도에 팔리면서 휘발유 자동차가 서서히 시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1920년대 도로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전기자동차가 달리는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운행하는 자동차가 필요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운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것은 미국 텍사스에서 원유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부터다. 이로써 휘발유 자동차는 값싼 동력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에 전기자동차는 당시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배터리의 무거운 무게와 충전시간이 느린점, 그리고 가솔린 차량대비 두배의 가격등으로 인해 그동안 누리던 이점을 모두 잊어버리게되어 전기차의 인기는 급격하게 식게되어 전기차는 자동차 시장에서 자취를 감취게 되고 이후 100년간 내연기관자동차는 자동차 시장에서 왕좌자리에 앉게된다.

 

전기차의 암흑기

이후 전기자동차의 개발은 2차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잠시중단되었다가 전후 소량의 전기차들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내연기관차의 주행거리와 충전속도와 가격등의 문제로 상용화되지는 못하였다.

a.일렉트로바겐 (1956)  b.헤니킬로와트 (1959)  c.일렉트리베어2 (1966)  d.페이서 (1978)

1960년대말에서 1970년대초에 일어난 Oil shock로 불리는 원유의 가격 상승과 환경문제의 대두로 인해 전기자동차가 다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되었다.

미국은 외국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고, 미국 내 연료 공급원에 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1976년 미국 의회는 전기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연구 개발과 관련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크고 작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자동차를 포함한 대체 연료 차량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 GM은 1973년 젓 도시형 전기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고, 다른 제조사들은 미국 우정청이 사용할 배달용 전기차를 생산했다. 

월면차 Rover (1971년)

NASA가 달 탐사를 시작하면서 달에서 운전하는 최초의 유인 자동차 역시 전기차였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가솔린 자동차보다 단점이 컸다. 전기자동차는 일반적으로 시속 약 72km에 최고속도 제한이 걸려있었고, 주행 가능 거리 역시 64km에 불과했다.그렇게 전기차는 다시 20년간 관심에서 멀어졌다. 

 

전기차의 부활

1990년대에 들어 환경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다. 친환경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각 자동차 제조사는 또다시 전기차를 꺼내 들었다. 이때 개발된 전기차는 일상적인 주행에 문제가 없을 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었고 100km에 가까운 주행 가능 거리를 확보했다.

GM EV1 (1996년)

 

이 시기에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전기차는 GM의 EV1이다. GM은 1996년에 양산형 전기차인 EV1을 개발하였는데 다른 제조사들이 기존의 자동차를 전기차로 개량하려 했던 것과 달리 EV1은 독립적으로 새롭게 설계하고 개발했다. 주행 가능 거리는 약 130km에 달했고 시속 80km까지의 가속은 7초 만에 끝냈다. EV1은 출시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1999년에는 성능과 가격이 좋아진 2세대 모델이 나오기도했다. GM의 EV1프로그램은 리스 방식으로 판매됐는데 이후 리콜과 높은 생산 비용 그리고 정유회사들과 다른 완성차 연합체들의 견제로 인해 2003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도요타 프리우스 1세대 (1997년)


그러는 사이 도요타의 HEV인 프리우스가 1997년 혜성과 같이 나타나 HEV열풍을 만들어냈다. 시장에서는 BEV인 EV1보다는 HEV인 프리우스가 현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전기자동차 유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프리우스의 열풍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HEV가 친환경차의 대세로 인정이 되었다. 

테슬라 로드스터 1세대 (2008년)


전기차가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된 것은 2006년 테슬라의 등장이다. 실리콘 밸리의 소규모 스타트업이었던 테슬라가 한 번의 충전으로 3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고급 전기 스포츠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고 그들의 발표대로 2008년 1세대 테슬라 로드스터가 생산되었다.

VW의 배기가스 조작사건 (2015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기자동차의 개발을 가속화한 다른 요인은 2015년 발생한 VW의 디젤 배기가스 조작사건이었다. VW은 전세계에 판매한 1100만대의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하였다. 일명 디젤게이트르 불리는 이 스캔들은 자동차 회사들이 디젤차 비중은 줄이고 친환경차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이후 온실효과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고 향후 전기차와 수소차만 생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전기차 개발과 시장이 확대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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